편지에서 가장 중요한 건 ... 일지도 몰라요

태어나 처음으로, 당신에게 편지란 것을 쓰려 연필을 들어요. 하얗게 빈 편지지 위 나는 길을 잃었죠. 분명, 그리고 정말 많이 당신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구부러지고, 꺾인 기호들 조립 속에 이 마음을 담을 수 있을까요. 

몇 안 되는 당신과의 시간을 떠올려봐요. 눈동자와 종이 사이 어딘가 시간이 맺혀요. 금세 눈앞은 뿌예지고, 나는 습관처럼 안경을 닦아봐요. 손수건 속 조그마한 꽃잎 옆에 또 얼룩 한 개를 새겨요. 

한 줌 숨을 내쉬어요. 그리고 좋아하는 로즈메리 차를 빌려 마음을 천천히 따라봐요. 사각거리는 연필심을 따라 몇 줄의 찻물이 채워져요. 자잘한 찻잎 사이로 늘 차가운 아메리카노만 시키던 당신이 떠올라요. 

대학 동기의 결혼식이 끝난 연회장, 어쩌다 우린 마주 앉게 되었죠. 그날도 당신은 얼음이 가득한 아메리카노를, 나는 따듯한 로즈메리 차를 주문했죠. 

우린 별것도 아닌 이야기로 한참을 떠들었어요. 여전히 당신은 아침으로 태운 듯 구운 식빵을 먹고, 저녁엔 운동 겸 두 정거장 먼저 내려 산책한다 했죠. 

잠시 우린 말이 없었어요. 커피잔에 맺힌 물방울 속 당신의 눈동자가 비쳤죠. 당신의 눈빛은 나를 지나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던 듯 해요. 당신은 로즈메리의 꽃말이 /나를 사랑해줘요/라는 걸 알까요? 

한참을 지우고 책상 위 어지러이 흩어진 지우개 가루를 털어내요. 

무더위가 비를 따라 내리던 밤, 내 머리에 묻은 빗방울을 털어주던 당신의 손길에 내 마음을 다시 담아봐요. 왜 당신은 빗방울을 털어주었을까요? 차라리 닦을 엄두도 안 날 만큼 비가 퍼부었더라면. 물방울도, 내 마음도 다 씻겨버렸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요. 

금세 손등이 트는 계절이 왔죠. 하지만 당신의 손길은 마르지 않은 채 여전히 내 머리에 남아있어요. 

결국 밤이 꼬박 지났어요. 빈 종이 위엔 '안녕, 잘 지내지?'만이 남았어요. 나는 서둘러 흔하디흔한 생일 축하 문구를 적어요. 그리고 수도 없이 지웠다 쓴 문장을 마지막으로 지우고 점 세 개를 찍어요. 나의 비겁함을 용서해줘요. 

편지에서가장중요한건···일지도몰라요

주황색 송전탑과 푸른 나무들이 찍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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