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 앞면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 뒷면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만덕이에요

비가 오다말다 장마가 왔네요. 처음으로 할아버지께 편지를 써보려 연필을 들었어요. 잘 지내시죠? 시제 때 내려간 게 마지막이니 벌써 서너달이 되어가네요. 

할아버지에게 저는 예쁜 손자일까 문득 생각이 드네요. 할머니도 같이 계시던 어렸을적, 방학이면 놀러가 돗자리 위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맨날 파리를 잡던 기억이 나요. 입김이 나오는 추운 겨울, 일어나 마루에 나가보면 동도 트기 전 깜깜한 새벽부터 깜깜한 마당에서 할아버지는 가마솥에 소여물을 끓이고 계셨죠. 심야버스를 타고 한밤 중에 도착해도 미리 틀어놓은 보일러에 작은방 솜이불 속은 늘 따듯했죠. 

저희 아빠도 할아버지를 닮으셨을테니, 할아버지도 살갑게 먼저 놀아주시는 편은 아니셨죠.. 늘 묵묵히,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고 또 손보셨죠. 생각해보면 제가 좀 더 옆에서 따라다니며 조잘조잘 이야기도 하고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보냈더라면 싶죠. 참 이제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 점차 할아버지가 웃으시는 모습이 줄어드는 것 같아 참..

옛날 마루 한 가운데엔 가훈이라 해서 근면, 성실, 협동이 적힌 액자가 걸려있던게 기억나요. 아마 제겐 그 단어를 볼때마다 할아버지가 생각나겠죠. 누구보다 열심히 근면하게 사셨던 모습을

감사함, 죄송함, 안타까움, 많은 생각과 감정이 뒤섞여 들다보니 편지를 너무 못 쓴것 같네요.. 추석에 내려가게 되면 해든이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조금은 할아버지 옆에서 재잘거려보려구요. 손자를 보는 마음은 어떤 느낌일까요. 그리고 손자는 어떠해야 할까요. 한 평생 끊임없이 일해 하나의 큰 가족을 일구셨는데, 조금은 보답을 받으셨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살갑지도 못했고, 애교도 없던 그저 어렸던 손자여서 죄송합니다. 이제야 조금 세월이라는 것에 대해 느끼고 좀 더 잘해야 했었는데 하곤 생각하는게 참.. 먼저 다가갈 생각조차 없었던 어린 모습을 이제야 되돌아보게 되네요.

내려가면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싶네요. 이제 들을 준비가 되어서 죄송해요. 제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으셨으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 손자 만덕 올림

할아버지에게보내는첫번째편지

loletter 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