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에게 물들어가는 걸까요?

나는 우리가 도쿄에서 만났던 날을 기억해요. 그날은 봄이 가득했죠. 우에노 공원엔 벚꽃이 끝없이 늘어져 있었고, 하양, 빨강, 초록 오리배들은 파스텔 톤 호수를 천천히 떠다니고 있었죠. 판다가 보고 싶었던 나는 아침 일찍부터 줄도 섰죠. 

따스함을 따라 한참 공원을 거닐다 당신의 디엠을 받았어요. 대뜸 너 우에노 동물원이냐며, [이렇게 사랑스럽게 대나무를 먹을 수 있다니🐼🎋🥰]하고 내가 올린 스토리를 봤다고, 자긴 박람회 출장으로 도쿄 빅사이트라는 이야기였어요. 졸업하고 동기 결혼식이라든지, 같이 수업 듣던 교수님 연락처를 물어본 일 말곤 아무 대화도 없던 당신의 뜻밖의 연락이었죠. 

낯선 도시와 우연함, 반가움이 뒤섞인 감정 속 나는 홀린 듯 당신과 늦은 점심 약속을 잡았어요. 우리가 간 식당은 시내의 작은 덮밥집이었죠. 오랜만에 본 당신의 얼굴은 뭔가 단단해져 있었어요. 나이 듦과 책임감, 타오르는 열정 사이 어딘가에서 서성거리는 느낌이었죠. 몇 년 만에 만났지만 당신은 마치 어제도 본 사람처럼 이야기를 했어요. 자긴 더위를 많이 타는데 덥지 않아 다행이라는 둥, 같이 온 상사가 밤에 코를 너무 골아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둥... 

미주알고주알 당신의 이야기와 함께 식권자판기에서 표를 끊었어요. 당신은 점보 가츠동을, 나는 우엉튀김을 곁들인 에비동을 주문했죠. 우린 자리에 앉아 레인보우 브릿지라든지, 바나나 크레이프 같은 것들에 대해 한참을 더 이야기했어요. 결국 오다이바에서 본 석양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즈음 음식이 나왔죠. 세숫대야만한 그릇엔 모락모락 김이나는 가츠동이, 에비동엔 산호초 같은 우엉과 새우튀김의 새빨간 꼬리가 빛나고 있었어요. 

당신은 "너 생강 절임 싫어했지? 내가 먹어줄까?"라고 했죠. 제가 생강 절임을 싫어한다는 말을 했었나요? 얼떨결에 에비동 속 채썰린 분홍 생강들은 당신의 가츠동 볼에 가게 되었죠. 맞아요, 처음 먹은 날 알싸함에 콧물을 줄줄 흘린 뒤론 늘 생강을 골라내곤 먹었어요.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생각했어요. 어렴풋한 대학 시절, 학생 식당에서 당신, 그리고 동기들과 떠들썩하게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도 아이처럼 생강을 하나하나 골라내고 먹었겠죠. 고작 분홍색 생강 절임에, 그렇게 당신의 행동은 내게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죠. 당신과 내가 같은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한 잔의 투명한 물이었는데. 당신의 눈빛 하나가, 말 하나가 에스프레소를 내 마음에 떨어뜨려요. 나는 이렇게 당신에게 물들어 가는 걸까요? 

나는당신에게물들어가는걸까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핀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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