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고민하는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있어 처음엔 시작이 제일 어려운 줄 알았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시작에 대한 고민으로 수많은 밤을 지새웠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가는 건 맞는 건지, 괜한 일을 벌이는 건 아닌지, 잘 굴러가던 돌을 걷어차 버리는 건 아닌지. 게다가 나이가 들며 새롭게 얻은 책임들이라든지, 손에 쥔 걸 내려놓았을 때 느껴질 매서운 바람과,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신경 쓸 수밖에 없는 사회가 조용히 규정한 모습들 등... 

매번 길 앞에서 서성이기만 했죠. 길의 모든 갈림길과 결말들을 완벽히 알아내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꿈의 끝은 늘 세 개의 막다른 골목이었죠. (1) 현실의 길은 나무뿌리와 같아서 볼 수 있는 건 고작 땅 위로 드러난 일부뿐이고, (2) 동시에 그것은 살아있어서 갈래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죽고 새로 날 것이니, 지금 모습 그대로 나를 기다려 줄 리 없다는 것, (3) 두 문제가 어찌저찌 해결된다 한들 모든 내용과 결말까지 다 정해지고, 알아버린 박제 된 길을 걷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과연 나는 군말 없이 그대로 길의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지? 

몇 년간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끝에 도달하고, 일상에 또 잊히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늘 그랬듯 우연들 속에 '시작'이 시작되었죠. 

삶의 우연은 저를 시작으로 밀어냈지만, 두 가지 생각도 시작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나는 중력에 대한 어렴풋한 비유였죠. 말하자면, 하고 싶은 일은 마치 중력과 같아서 제가 몇 살이 되건, 어디서 뭘 하건, 그 한가운데로 저를 계속해서 당길 겁니다. 평소에야 잊고 지낼 수 있겠죠. 하지만 어디론가 굴러떨어진다거나, 그날따라 '나는 왜 살아가는지' 같은 물음에 유난히 몸이 지치고 무겁다면, 결국 나는 중력 아래 있었음을 떠올리는 거죠. 

오래된 여행에서 얻은 교훈도 제 등을 살짝 밀어줬습니다.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군'이라는 생각인데, 이제 보니 교훈이라 하기엔 민망합니다. 홍콩에서 제멋대로 빨랫줄에 걸려 건물 한 면을 가득 채운 색색의 옷을 보고 짤막하게 흘려 적었는데, 별것도 아닌 기억이 늘 마지막 한끝을 밀어주었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세상엔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자 삶을 사는데 내가 이거 조금 해본다고 뭐, '를 되뇌며 한 번 용기를 내 본 거죠. 

그런데 시작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죠. 혼자 마음을 '안 할래'에서 '해보자'로 바꿨다고 달라질 게 있겠습니까? 결국 내가 무언가라도 해야 했던 거죠. 그리고 한 삽씩 산을 파다 보니 진짜를 마주하게 된 겁니다. 동굴 속에 잠들어 있던 두 마리의 용, 불안 다스리기꾸준함을요. 

Nothing that has meaning is easy - The Weather Man(2005)

영화 「The Weather Man」엔 "의미 있는 일은 쉽지 않지"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거저 얻어지는 건 없죠. 날림으로 만든 건 금세 날아가 버릴 겁니다. 결국 저는 쏟은 시간만큼의 결과를 받겠죠. 애 아빠가 시간을 쪼갠다는 건 쉽지 않더군요. 혼자일 땐 뭐했나 싶기도 했죠. 빈 종이에 가볍게 지도라도 한 번 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바라보았죠. 그건 마치 장대높이뛰기를 하는데, 하늘 끝까지 솟은 가로대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재밌으니까 하기야 하겠지만, '언제 저기까지 가나... 갈 수는 있는건가... 내가?' 싶은 거죠. 

조급함에 실패에 대한 걱정이 몇 스푼 더해지니 불안이라는 훌륭한 수프가 완성되었습니다. 여전히 제겐 이 수프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어렵긴 합니다. 먹긴 먹어야 하는데. 저번에 살짝 맛본다고 떠먹어 봤다가 혀가 다 뎄었죠. 짱구를 굴려봤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는 듯합니다. 어머니가 늘 말씀하셨듯 천천히―조금씩―후후 불어먹는 수밖에요. 

결국 모든 고민과 시작, 행동 끝에 남은 건 꾸준함 뿐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지금까지 쳐다봤던 건 길이 아닌 하고 싶은 걸 하는 길이라 쓰인 입간판이었던 거죠. 길은 걸어야 길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길의 단 하나 규칙이 있다면 아무 생각 없이 걸어야 함 일 것입니다. 그저 인심 좋은 신이 있다면 제 호주머니 한쪽에 ‘수완’이라는 소금빵을 찔러넣어 주길 바라면서요. 한참을 쓰고 보니 결국 이건 저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였군요. 그럼에도 새로운 시작을 앞둔 분에게 조금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가끔 길의 교차로에서 만나 차나 한잔하는 것도 좋겠죠.

loletter 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