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버님. 숙현이와 함께 보낸 여름이 벌써 일곱 개가 되어가네요. 이제서야 이렇게 글 몇 줄을 씁니다.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아버님도 ‘웬 편지’ 하실 것 같네요....
휴! 하마터면 산후조리원에서 여보 생일을 보내는 줄 알았어. 쑥 제때 나와 준 해랑이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그래도 제일 많이 고생한 건 여보야.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불씨처럼 번지는 생의 시작을 우리에게 전해준 여보는 정말 최고인걸....
애프터 신청에 대한 답장은 다음 세 가지 방식 중 하나로 귀결된다. 1초 만에 <좋아요!>를 보내는 경우, 두어 시간쯤 지나 <아무개 씨는 좋은 분이지만 인연이 운운…>하는 경우, 그리고 아무 말도 없는 경우. 이 중 문제가 되는 건 단연 마지막이다....
엄마가 어제 카톡으로 사진 한 장 보냈더라고요. 아빠랑 둘이 마당 텃밭 매고 계시던데, 아이고오. 쪼그려 앉아 계시니까 무슨 조약돌인 줄 알았어요. 분홍색 꽃무늬 티셔츠 아니었으면 못 보고 지나쳤을걸요. 참말로, 뒷 마당 장독대는 어떻게 쓰시는지....
이게 무슨 일입니까. 위니펙에 폭염 경보가 발령되었군요. 화요일은 35°C/11°C라는데, 제 눈이 잘못된 건 아니겠지요. 왜냐하면 같은 주 토요일의 기온은 3°C/-1°C라고 쓰여있기 때문입니다. 위니펙은 대체 어떤 곳일까요. 잘 지내고 계십니까? 편지를 쓰려 잠깐 날씨를 봤는데, 이상한 나라의 토끼 굴에 발이 채인 기분입니다....
안타깝게도 소개받은 이성이 모두 덱스나 박보검일 수는 없는 일이다. 파스타를 먹고 커피를 마신 뒤 조심히 들어가라는 인사치레가 끝나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부터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골치가 쑤시기 시작한다. 영영 주선자를 안 볼 게 아니라면 그의 면을 생각해서라도 상대에게 거절 의사를 전하는 것이 사교계의 통상적인 예절이기 때문이다....
해든이랑 아파트 길을 걸을 때마다 이 나무에 꽃이 피면 봄이 오는거야~ 하며 목련나무를 하루하루 유심히도 올려다 보았는데, 어느새 해든이 볼따구 같은 보드라운 껍질을 벗어내고 새하얀 목련꽃잎을 피워내더라....
놀이터 한 편에는 회양목이 오보록이 모여 있다. 다듬은 지는 조금 되었는지 뻗친 가지들이 제멋대로다. 화단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민들레, 토끼풀, 달개비, 머위… 요 며칠 쏟아진 비에 키가 한 뼘은 더 자란 것 같다....
짙은 분홍을 담은 눈싸라기들이 나뭇가지 위에 내려앉아 있습니다. 공원의 잔디는 누르튀튀하지도, 그렇다고 푸릇하지도 않은 기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 멀리 목련꽃 등불이 점점이 켜져 있습니다....
숙현이가 아침에 사진을 보냈다. 아파트 화단에 꽃 핀 것 좀 보라며, 텁텁하니 불그스름한 애기동백이었다. 이곳은 여전히 앙상한 은행나무 가지들만 늘어서 있다. 봄이 올 듯 오지 않는다. 네게 편지를 쓰려 정처 없이 길을 걷고 있다. 걷다 보면 헝클어진 생각도 조금은 녹아 내리지 않을까 싶다. 네게 하고 싶은 말도 분명해졌으면 좋겠다....
예, 오래 기다리셨네요. 참 살갑지 못한 아들이었죠.잘하고 있냐 물어봐도 맨날 알아서 잘하고 있다고. 부모란 것이 그렇듯, 품에서 떠나가는 자식이 어떻게 지내는지 여전히 궁금했을 텐데. 시시콜콜 자기 이야기도 하고 고민거리도 털어놓는 그런 아들은 아니었으니....
되돌아보면 잘 살아왔는가? 스물은 어떨지 모르지만 서른 후로는 잘 살아왔다 자부할 수 있다. 순간에 충실했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으며, 삶이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했다. 모든 순간 진정 중요한 게 무엇인지 내게 물었고, 결정된 것에는 진심을 다했다....
야야야 죽상 좀 펴라. 백날 얼굴 찌그러트려서 뭐. 그러면 좋은 일 생기냐? 있는 일도 다 도망가겠다 인마. 뭐가 그렇게 문제인데....
저는 신이 있다 믿습니다. 그래야 세상이 더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더 간절히 당신이 있다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주 일요일까지 (당신도 아시다시피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편지 한 통을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안녕 가을아. 가을에 찾아와 가을이야. 조금 성의 없지? 네 형은 하임이었어. 내가 <초코하임> 과자를 좋아했거든. 네 엄마와 나, 둘 다 썩 괜찮은 태명이라 생각했어. 하이마, 하이미. 귀엽게 뒤로 넘어가는 ㅁ도 좋았고. 너에게도 멋진 태명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참으로 어렵구만. 핑계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여보 편지는 정말 잘 쓰고 싶어서 매번 뒤로 미루고만 있었어. 뭐라 해야 할까. 다른 편지보다 몇 배는 더 신경 쓰고 싶고, 그래서 여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았으면 하니까…...
일요일 오전, 침대에 누워 안방 천장을 바라보던 내 겨드랑이 사이로 너구리 인형을 안은 네가 가만히 들어와 눕는다. 방 안에는 정온이 가득하다. 볼록한 너의 배가 달싹이고, 햇살처럼 부푼 너의 볼 위로 솜털이 아른거린다. 꽤나 커버렸지만 여전히 조그만 너의 생을 쓰다듬어 본다....
어때, 할만하냐? 마음을 담는 일 말이야. 그래도 레버 돌리는 건 제법 익숙해진 것 같던데. 한 달 전만 해도 허구한 날 낑낑대더니 이제 속도 좀 붙일 줄 안다고 좋아서 신나게 돌리는 모습이 귀엽더라. 비슷비슷하니 토씨만, 순서만 다른 문장들을 매번 열댓 개씩 쓰는 건 웃기는 일이긴 해....
지난 달인가, 난생처음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라는 걸 뗄 일이 있었어요. 회사 다니는 직장가입자인지, 부양받는 직장피부양자인지, 둘 다 아닌 지역가입자인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건강보험 가입 이력이 적힌 서류더라고요....
내일이면 주말이라는 생각에 자꾸만 손에서 일이 미끄러지는 금요일 오후 5시. 너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어린이집 하원은 했을 테고, 병원에 갔을까? 점심 먹기 전 네 엄마와 통화하니 오늘은 병원에 간다고 하던데. 열은 없으니 네가 좋아하는 딸기맛 코미 시럽만 받아오려나. 네 엄마를 닮아 벌써부터 비염으로 킁킁대는 우리 강아지. 콧물이 삐져나온 코로 씩씩하게 놀고 있는 사진을 보니 웃기더라....
시간 잘 가, 그치? 벌써 18년이 되어가는구먼. 그저 같은 대학 전공을 선택한 새내기들이었는데. 딱히 취미가 겹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탈脫건축을 하는 바람에 일하는 곳도 달라졌고, 나는 먼저 결혼에 골인해 애까지 가졌잖아. 한껏 다른 세계에 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다니, 둘 다 별생각 없는 녀석들이었나 봐....
어스름 속 행복한 꿈을 꾸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살며시 방문을 닫고 나왔어. 주섬주섬 오늘도 어제 입은 자주색 양말과 남색 잠옷을 챙겨 입어. 날씨가 더 추워지면 양말을 두 겹 신어볼 생각이야....